책 리뷰

인터메초 리뷰 (심리묘사, 문체, 관계서사)

_ming_racle 2026. 6. 3. 12:40

아일랜드 작가 샐리 루니의 장편소설 『인터메초』는 출간 직후 영미권 문학계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소설 중 하나입니다. 저도 처음에는 그냥 유명한 소설이려니 하고 별 기대 없이 펼쳤는데, 50페이지를 넘기면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이 소설이 왜 지금 이 시기에 읽혀야 하는지, 그리고 솔직히 마냥 좋게만 볼 수는 없는 부분은 어디인지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인터메초


심리묘사, 샐리 루니가 쓴 방식이 다른 이유

이 소설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문체 자체입니다. 샐리 루니의 글쓰기는 의식의 흐름(stream of consciousness) 기법을 변형한 방식을 씁니다. 여기서 의식의 흐름이란 인물이 느끼는 생각과 감정을 논리적 순서 없이, 떠오르는 대로 연속해서 서술하는 소설 기법입니다. 제임스 조이스나 버지니아 울프가 대표적입니다.
그런데 저는 읽으면서 이 소설이 의식의 흐름보다는 오히려 의식의 파편화에 가깝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파편화된 서술이란 인물의 내면이 완결된 문장이 아니라 토막 난 감각과 기억, 말하지 못한 말들의 조각으로 쏟아지는 방식입니다. 꽉 묶인 자루를 거꾸로 들었을 때 작은 유리 조각들이 사각거리며 쏟아지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하면 맞을 것 같습니다. 직접 읽어보니 처음 몇 챕터는 이 파편들이 너무 빠르게 쏟아져서 읽는 속도가 뚝 떨어졌습니다.
이 소설에서 주목할 만한 서술 구조는 홀수 챕터와 짝수 챕터를 나누어 형 피터와 동생 아이번의 시점을 번갈아 가며 전개한다는 점입니다. 이 교차 서술(alternating perspective) 방식 덕분에 독자는 같은 사건을 두 사람의 전혀 다른 내면에서 경험하게 됩니다. 저는 재취업을 준비하면서 같은 상황을 두고도 저와 부모님이 완전히 다른 감정을 갖고 있다는 걸 자주 느꼈는데, 그 감각이 이 소설에서 그대로 언어로 구현된 것 같아서 읽는 내내 묘하게 공감이 됐습니다.
샐리 루니 문체의 핵심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사건보다 사건이 인물에게 남기는 파장을 중심으로 서술한다
  • 대화의 내용보다 대화가 오가는 분위기와 침묵을 더 세밀하게 묘사한다
  • 짧게 끊긴 문장들이 연속되면서 인물의 불안과 욕망, 체념을 한꺼번에 담아낸다

이런 방식이 낯선 독자에게는 초반 30페이지가 꽤 버거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중반을 넘기면 오히려 이 파편들이 독자의 감각에 밀착되면서 인물과 분리되지 않는 느낌이 생깁니다.


문체로만 읽기엔 아까운 관계서사의 밀도

이 소설을 한마디로 요약하라면 관계의 소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를 잃은 두 형제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사랑과 연대를 찾아가는 이야기입니다. 피터는 32살의 변호사로 외부에서 보면 순풍에 돛 단 듯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면에는 깊은 자기혐오와 죄책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동생 아이번은 22살로 사회적 적응력이 낮고 직업도 불안정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알고 그것을 향해 직진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개발자로 재취업을 준비하면서 이 두 인물 사이에서 내 모습을 번갈아 발견했습니다. 경력이 있어도 미래가 불확실하다는 불안감은 피터를 닮아 있었고, 그러면서도 하고 싶은 방향을 향해 새로 공부를 시작하는 마음은 아이번에 가까웠습니다. 가족의 응원이 없었다면 솔직히 이건 쉽지 않았을 겁니다.
소설에서 다루는 세 가지 연애 관계는 각각 다른 종류의 불균형을 보여줍니다. 아이번과 36살 마거릿의 14살 나이 차이, 피터와 22살 나오미 사이의 경제적 불균형, 그리고 피터와 전 연인 실비아 사이의 신체적 제약으로 인한 플라토닉 관계입니다. 이 세 쌍의 관계가 서로를 은밀하게 비추는 구조가 특히 정교합니다.
나이차 관계(age-gap relationship)는 문학에서도 현실에서도 찬반이 엇갈리는 소재입니다. 여기서 나이차 관계란 통상적으로 10살 이상의 나이 차이를 가진 연인 관계를 지칭하며, 권력 불균형이나 성숙도 차이로 인한 갈등이 수반될 수 있다는 점에서 심리학적 논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이 소설에서 그 관계들은 판단 없이 서술되지만, 독자가 스스로 판단하도록 충분한 내면 묘사가 제공됩니다.
흥미로운 것은 인물들이 서로의 상황에 자신을 투영한다는 점입니다. 마거릿이 피터의 죄책감에 공감하는 것은 자신의 전 남편과의 이혼 경험이 겹치기 때문입니다. 피터가 마거릿을 비난하는 것은 사실상 자신을 비난하는 행위입니다. 이 심리적 투영(psychological projection) 구조, 즉 자신의 감정이나 욕구를 타인에게 전가하는 방어 기제가 소설 전체에 촘촘히 깔려 있습니다.
국내 독서 인구 현황을 보면 2023년 기준 성인 연간 독서율이 43%까지 하락했습니다(출처: 문화체육관광부). 이런 상황에서 이 소설처럼 인물의 내면에 깊이 이입하게 만드는 소설이 독자층을 회복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공감은 가지만 경제 현실이 빠진 서사

솔직히 이 소설을 읽으면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생겼습니다. 『인터메초』가 다루는 인물들의 불안과 불확실성은 매우 설득력 있게 그려지지만, 그 불안의 원인이 주로 심리적·관계적 층위에서 설명된다는 점입니다.
제가 재취업을 준비하면서 체감하는 불안은 가치관의 문제가 아닙니다. 임베디드 시스템이나 AI 분야로 커리어를 확장하려고 공부를 더 했는데도 취업 시장이 좁아진 현실이 더 직접적인 원인입니다. 임베디드 시스템이란 특정 기능을 수행하도록 설계된 전용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결합된 컴퓨팅 시스템으로, 자동차, 가전제품, 산업 장비 등에 내장되는 기술입니다. 이 분야까지 확장해서 공부했지만 사회가 요구하는 스펙 기준과 개인의 선택 사이의 간극은 생각보다 컸습니다.
저출생과 비혼 문제를 가치관 다양성의 관점에서만 보는 시각이 있는데, 저는 그 시각이 절반만 맞다고 생각합니다. 가치관 변화가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청년들이 결혼과 출산을 미루는 더 현실적인 이유는 경제적 불안정성입니다. 2023년 기준 청년 체감실업률은 21.4%에 달합니다(출처: 통계청). 여기서 체감실업률이란 공식 실업자뿐 아니라 취업 의욕 상실자, 단기 아르바이트 종사자 등을 포함하여 실제 고용 불안 상태에 있는 인구를 반영한 지표입니다. 이 수치는 단순 실업률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불안정한 상태에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물론 소설이 사회구조를 직접 다루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아이번이 택배 기사와 데이터 용역을 전전하면서도 그 경제적 불안이 관계의 중심 갈등으로 연결되지 않는 부분은 아쉬웠습니다. 가족이 제공하는 정서적 안전망의 역할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힘든 시기에 새로운 분야를 공부할 수 있었던 것은 가족의 응원이 있었기 때문인데, 이 소설에서 가족은 주로 갈등의 원천으로 등장합니다. 가족주의의 부작용을 지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족이 현실에서 실제로 작동하는 안전망 기능이 소설에서는 상대적으로 약하게 그려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읽을 가치가 충분합니다. 인물의 심리를 이처럼 정밀하게 언어로 번역해 낸 소설은 최근 들어 쉽게 만나기 어렵습니다. 특히 관계에서 나오는 죄책감과 자기혐오, 상대방에게 자신을 투영하는 방식이 너무 정확해서, 읽다가 멈추고 한동안 멍하게 있었던 순간이 몇 번 있었습니다. 『노멀 피플』이 좋았다면 이 소설은 그것을 한 층 더 깊게 파고듭니다. 먼저 읽고 나서 판단하셔도 늦지 않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UxW-Sab0u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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