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합계출산율이 0.75명을 기록했습니다. 숫자만 보면 그냥 지나칠 수 있지만, 저는 이 수치를 접했을 때 묘하게 남 얘기 같지 않았습니다. 취업 준비를 다시 시작하면서 결혼이나 출산은 제 머릿속에서 한참 뒤로 밀려난 지 오래였거든요. 그래서 서울대학교 아동가족학과 진미정 교수의 저서 『가족이라는 사치』를 읽으면서 꽤 많은 부분에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가족주의, 나쁜 것도 아니고 좋은 것도 아니다
혹시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참가자들이 "부모님께 보답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장면을 보며 공감했던 적 있으신가요? 저는 있습니다. 개발자로 다시 취업을 준비하면서 "좋은 회사에 가고 싶다"는 마음 안에는 순수한 커리어 욕심만 있는 게 아니라, 부모님을 안심시키고 싶다는 감정도 분명히 섞여 있습니다.
진미정 교수는 이를 '가족주의'라고 설명합니다. 가족주의란 가족의 성공이 곧 나의 성공이고, 나의 성공이 가족의 성공이 되어야 한다는 가치관을 의미합니다.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니지만, 사회적 강박이나 통념과 결합할 때 압력이 됩니다.
그런데 저자는 여기서 흥미로운 전환을 짚어냅니다. 지금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가족 이데올로기는 유교적 가족주의가 아니라 '서정적 가족주의'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서정적 가족주의란 척박한 세상에서 오직 가족만이 진짜 안식처이자 내 편이라는 믿음입니다. 아름다운 감정처럼 들리지만, '주의'가 붙는 순간 가족 이기주의로 쉽게 변질됩니다. 과도한 사교육 경쟁이나 자녀를 위한 무분별한 민원이 그 전형적인 예입니다.
부계 가부장제(부계를 중심으로 남성이 가정의 권위를 독점하는 체제)는 조선 시대 17세기 이후 성리학의 통치 이념화와 함께 강화된 역사적 산물입니다. 지난 20~30년 사이 남아 선호 사상이 약화되고 딸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졌으며, 제사권까지 흔들리고 있다는 점은 이 체제가 사실상 해체 과정에 있음을 보여줍니다. 저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지금 우리가 겪는 가족 문제의 상당 부분이 이념적 전환기의 혼란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저출생 통계, 우리가 잘못 읽고 있는 것들
"이혼율이 50%에 육박한다"는 말,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저도 오랫동안 그게 사실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 수치는 통계 해석 오류에서 비롯된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조이혼율(crude divorce rate)이란 인구 1,000명당 이혼 건수를 나타내는 지표입니다. 그런데 언론에서 흔히 인용하는 '결혼 건수 대비 이혼 건수' 비교는 서로 다른 모집단을 단순 대입한 것으로, 이혼율을 실제보다 과장하는 왜곡이 발생합니다. 조이혼율, 일반 이혼율, 유배우 이혼율(실제 결혼 상태인 부부 중 이혼 비율) 등 지표마다 의미가 다른데, 이를 뭉뚱그려 해석하면 개인의 결혼 결정부터 정책 방향까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한부모 가구 통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언론은 한부모 가구 증가를 미성년 자녀를 양육하는 이혼 가구의 증가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실제 데이터를 보면 미성년 자녀를 키우는 한부모 가구는 줄고, 성년 자녀와 부모가 함께 사는 형태가 늘고 있습니다(출처: 통계청). 잘못된 통계 해석이 한정된 예산을 엉뚱한 곳에 쏟게 만드는 셈입니다.
저는 취업 시장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자바 경력 있으면 취업 잘 된다"는 말을 믿었는데, 막상 임베디드와 AI 분야로 전환하려고 보니 전공 이수 여부, 경력 방향의 일관성 같은 시스템적 기준이 따로 존재했습니다. 숫자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 통계든 취업이든 맥락을 읽어야 한다는 것을 몸으로 배운 셈입니다.
결혼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게 설계된 시스템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이유가 단순히 가치관의 변화 때문일까요? 저는 그게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진미정 교수는 설문 결과를 인용하며 결혼을 안 하는 이유가 특정 몇 가지에 집중되지 않고 다양한 이유로 고르게 분포한다고 밝힙니다. 이 말은 "청년들은 집값 때문에 결혼을 포기한다"처럼 하나의 원인으로 환원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현재 한국의 사회 시스템은 결혼한 사람을 기준으로 설계되어 있어, 비혼을 선택한 사람은 미래를 상상하기 어렵고 구조적 불안정성을 안고 살아갑니다. 결혼이 단순히 낭만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 안으로의 편입'에 가까운 결정이 된 것입니다.
이 지점에서 저는 책의 주장에 부분적으로 이의를 달고 싶었습니다. 저자는 결혼과 출산을 어디까지나 개인의 선택으로 존중하자고 강조하지만, 출산율 감소는 결국 노동력 부족, 연금 재정 악화, 사회 유지 비용 증가로 이어지는 구조적 문제이기도 합니다. '가치'와 '선택'을 구분하는 것은 맞지만, 사회 전체가 감당해야 할 결과에 대한 논의를 개인의 자율에만 맡기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봅니다.
2024년부터 출생아 수가 소폭 반등하고 있는 것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10년 후에는 다시 큰 감소가 예상된다는 전망도 함께 내놓습니다.
저출생 문제 해결을 위해 지금 당장 점검해야 할 핵심 요인은 다음과 같습니다.
- 한국 남성의 긴 노동 시간과 출퇴근 거리로 인한 육아 참여 부족
- 유자녀 부모를 위한 재택근무 및 단축 근로 제도의 실질적 확대
- 결혼·출산 여부와 무관하게 노후를 안정적으로 설계할 수 있는 복지 기반
- 비혼 가구, 한부모 가구 등 다양한 가족 형태를 포용하는 제도 정비
다양한 삶의 방식, 인정받을 수 있을까
저는 자바 개발자로 3년쯤 일하다가 잠깐 다른 길을 걷고, 다시 개발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임베디드와 AI, 로봇 프로젝트까지 손을 뻗어봤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한 가지 방향으로 쭉 가지 않으면 "일관성이 없다"는 시선을 받게 된다는 것을요. 취업 시장도 결혼 시장도, 결국 사회가 설정해둔 정형화된 경로에서 벗어나는 순간 마찰이 생깁니다.
진미정 교수가 책 마지막에 던지는 메시지가 바로 이것입니다. 한국 사회는 물질적 성공과 팽창이라는 동질화된 가치를 강하게 추구해왔는데,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성공의 기준을 갖고 다양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사회가 되어야 가족의 다양성도 자연스럽게 수용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노키즈존 문제도 같은 맥락입니다. 아이를 통제하지 못하는 부모의 문제에서 출발했지만, 특정 집단을 아예 배제하는 것이 관행화되면 장애인, 노인, 비혼 가구 등 다른 소수자들도 같은 방식으로 밀려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부분이 책에서 가장 설득력 있는 대목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저자가 가족주의의 부작용은 충실히 짚어내면서, 가족이 여전히 제공하는 정서적 지지와 경제적 안전망 기능은 상대적으로 가볍게 다룬다는 점은 아쉬웠습니다. 한국은 북유럽처럼 강력한 복지 국가가 아닌 만큼, 가족의 실질적 역할이 여전히 큰 사회입니다. 가족 이데올로기를 해체하는 방향과 가족의 순기능을 살리는 방향이 어떻게 균형을 이룰 수 있는지, 그 다음 논의가 더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결국 이 책이 던지는 질문은 단순합니다. 우리 사회가 가족을 어떻게 재정의할 것인가, 그리고 그 안에서 개인의 선택을 얼마나 진심으로 존중할 수 있는가. 저처럼 커리어를 다시 짜고 있는 사람이든, 결혼을 고민하는 사람이든, 이 질문 앞에서 한 번쯤 자신의 기준을 점검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가족이라는 사치』는 그 점검을 도와주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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