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재취업 준비를 하면서 하루에도 수십 번 핸드폰을 집어 들고 있었습니다. Java 공부가 막히면 유튜브, 임베디드 코드가 안 풀리면 인스타그램. 그게 습관이라고 생각했는데, 책 한 권을 읽고 나서 그게 습관이 아니라 회피였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바로 마이클 이스터의 《편안함의 습격》이 그 계기였습니다.
왜 우리는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게 됐을까
혹시 마지막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있어 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하십니까? 저는 솔직히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지하철을 기다리면서도, 화장실에서도, 심지어 밥을 먹으면서도 화면을 보고 있으니까요.
책에서 인상 깊었던 내용이 하나 있습니다. 2007년 6월 29일, 아이폰이 처음 출시된 날을 저자는 "따분함이 사망 선고를 받은 날"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다소 과장된 표현이라고 느끼는 분들도 있겠지만, 저는 이 대목에서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미국 성인의 스마트폰 하루 평균 터치 횟수는 2,600번, 디지털 기기 사용 시간은 하루 11시간에 달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출처: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여기서 핵심은 단순히 "핸드폰을 많이 본다"는 게 아닙니다. 문제는 도파민(Dopamine)입니다. 도파민이란 뇌에서 분비되는 신경전달물질로, 새로운 자극이나 보상을 경험할 때 분비되어 '더 원하게'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스마트폰 알림, 짧은 영상, SNS 피드는 모두 이 도파민 분비를 유도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즉 우리가 지루함을 느끼는 순간마다 도파민을 찾아 핸드폰을 집어 드는 것은, 어떻게 보면 설계된 반응에 가깝습니다.
책에서 소개하는 심리학자 데이비드 레버리의 실험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사람들은 위협적인 얼굴이 줄어들어도 위협 판단 비율을 스스로 일정하게 유지했습니다. 문제가 사라지면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죠. 저도 STM32 임베디드 프로젝트를 마치고 나서 느꼈습니다. 오류를 전부 잡으면 끝날 것 같았는데, 다음 날 아침에는 또 다른 최적화 문제가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배고픔을 잃은 몸, 무료함을 잃은 뇌
그렇다면 이 편안함이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를 만들어 냈을까요? 책은 크게 네 가지를 꼽습니다.
- 따분함을 느끼지 못하는 뇌
- 진짜 허기를 구분하지 못하는 몸
- 죽음을 실감하지 못하는 감각
- 근육을 쓰지 않는 생활 패턴
이 중에서 저는 두 번째가 가장 충격적이었습니다. 허기에는 두 종류가 있다는 개념인데, 진짜 허기는 실제 에너지가 필요한 상태이고, 가짜 허기는 보상심리나 습관에 의해 배가 고프지 않은데도 음식을 찾는 행동입니다. 진화적으로는 음식이 부족하던 시절에 잉여 칼로리를 미리 축적하기 위한 본능이었지만, 지금은 그 본능이 과잉 섭취를 만들어 내고 있다는 것이죠.
책에서는 공복 상태가 12~16시간 지속되면 자가포식(Autophagy)이 시작된다고 설명합니다. 자가포식이란 세포가 스스로 손상된 세포 소기관이나 죽어가는 세포를 분해하고 재활용하는 생리적 과정으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개념입니다. 쉽게 말해 몸이 스스로 청소를 하는 시간인데, 하루 종일 음식을 먹으면 이 청소 시간 자체가 사라집니다. 세계보건기구(WHO)도 과체중과 비만이 전 세계적인 만성질환 주요 위험 요인임을 명시하고 있습니다(출처: WHO).
제가 프로젝트 마감 직전에 야식을 반복하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때 유독 집중력이 떨어지고 피로가 빨리 왔습니다. 당시엔 과로 탓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몸이 청소할 틈을 전혀 주지 않았던 것도 원인이었을 겁니다.
개발자로 일할 때 운동량이 급격히 줄어드는 건 거의 필연적인 수순이었습니다. 마감이 가까워질수록 의자에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코드 한 줄 더 짜는 게 밥 먹는 것보다 중요해지는 순간이 옵니다. 그 과정에서 신체활동 감소는 단순한 체력 문제가 아니라 뇌의 기능에도 영향을 줍니다. 대니얼 리버만 하버드대 교수는 "인간은 움직이도록 설계된 종"이라고 반복적으로 강조하는데, 이 말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선명하게 다가왔습니다.
불편함이 성취감을 만든다는 걸, 저는 코드로 배웠습니다
극한의 불편함을 경험해야 성장한다는 주장, 여러분은 어디까지 동의하십니까? 저는 여기서 저자의 주장에 부분적으로 의문을 품습니다.
알래스카 오지에서 순록을 사냥하는 33일은 분명 강렬한 경험이겠지만, 현실에서 직장인이나 취업 준비생이 그런 여정을 떠날 수 있는 여건은 거의 없습니다. 편안함을 지나치게 부정적으로만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의료 기술이나 위생 환경의 발전이 인간의 삶을 실질적으로 향상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책이 전달하는 진짜 메시지를 다시 읽어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저자가 말하는 건 "고통 자체를 즐겨라"가 아니라, "인간이 원래 어떤 존재였는지 기억하라"는 것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이건 꼭 알래스카 오지가 아니어도 가능합니다.
제가 직접 경험한 가장 설득력 있는 사례는 AI 프로젝트였습니다. 모델 성능 지표인 정확도(Accuracy)가 도저히 올라가지 않아서 하이퍼파라미터(Hyperparameter) 조정을 수십 번 반복했습니다. 하이퍼파라미터란 모델 학습 전에 사람이 직접 설정하는 값으로, 학습률이나 배치 크기 같은 것들이 해당됩니다. 이 과정이 너무 지루하고 막막해서 그냥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런데 결국 결과물이 나왔을 때의 성취감은, 쉽게 완성한 프로젝트에서는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그게 책에서 말하는 불편함의 가치입니다. 알래스카 오지가 아니어도, 8km를 고기를 지고 걷지 않아도, 풀리지 않는 코드를 붙잡고 앉아 있는 시간도 충분히 그 역할을 합니다.
이 책이 결국 남긴 질문은 이것입니다. "당신은 지금 진짜 배고픔을 느끼고 있습니까, 아니면 가짜 배고픔으로 무언가를 채우고 있습니까?" 공부든, 일이든, 관계든 마찬가지입니다. 편안함이 당연해진 환경에서 스스로를 성장시키고 싶다면, 반드시 이 책을 한 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극한 체험이 당장 불가능해도, 읽는 것만으로도 분명 무언가가 달라집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BSNWzfB0-QY&list=PLUpgTv3bu9rGxQBAMVaMvam27P0YbiY29&index=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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