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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단편 문학선 (일제강점기, 운수 좋은 날, 무력감)

책 표지에 적힌 연도를 보고 잠깐 멈칫했습니다. 1920년대. 고작 100년 전이라는 게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권 『한국 단편 문학선 1』에는 19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그 대부분이 일제강점기에 쓰인 작품들입니다. 읽는 내내 사전을 찾아야 했고, 일본어가 그대로 박혀 있는 대화체에서 '지리가미(휴지)'라는 단어를 처음 만났을 때는 잠시 멍해지기도 했습니다. 가장 불편하고, 가장 오래 남은 독서 경험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 소설이 보여주는 두 가지 시대의 민낯이 책에 실린 19편 중 현진건의 「빈처」 한 편을 제외하면 전부 지금으로부터 100년 이내에 쓰인 작품들입니다. 구체적으로는 5편이 1920년대, 9편이 1930년대, 5편이 1940년대 작품이고, 이 중 해방 이..

책 리뷰 2026.08.21

토니오 크뢰거 (시민적 사랑, 예술가의 갈등, 이중성)

"가장 많이 사랑하는 자는 패배자이므로 고통을 겪지 않을 수 없다." 토마스 만이 1903년에 발표한 중편소설 『토니오 크뢰거』에 나오는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저는 솔직히 좀 서늘했습니다. 사랑을 승패로 표현한다는 게 냉정하게 느껴지면서도, 어딘가 정확하게 맞는 말이라 반박할 수가 없었거든요. 예술가의 갈등 — 이름 하나에 담긴 이중성주인공의 이름 자체가 이 소설의 주제를 압축하고 있습니다. '토니오'는 라틴 아메리카계 어머니에게서 온 남유럽식 이름이고, '크뢰거'는 북부 독일 출신 아버지의 성입니다. 이름 하나에 두 세계가 충돌하는 구조죠.여기서 토마스 만이 설정한 대립 구도를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작품 안에서 북유럽은 이성(理性)과 규율, 시민적 질서가 지배하는 공간으로 묘사되고, 남유럽은..

책 리뷰 2026.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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