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오 영감 (파리 사회, 부성애, 물질주의)
주변 사람에게 정성을 다했는데 돌아오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던 경험, 한 번쯤 있지 않으신가요. 저도 그런 상황을 겪고 나서야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이 단순한 19세기 소설이 아니라는 걸 실감했습니다. 딸에게 전 재산을 바쳤지만 장례식조차 혼자 치러진 한 노인의 이야기. 읽는 내내 씁쓸함이 가시질 않았습니다.

파리 사회, 진흙탕 속의 인간들
『고리오 영감』은 1834~35년에 발표된 오노레 드 발자크의 대표작입니다. 이 작품은 그의 연작 소설 『인간 희극(La Comédie humaine)』을 구성하는 작품 중 하나입니다. 여기서 『인간 희극』이란 발자크가 프랑스 사회 전체를 소설로 기록하겠다는 야심으로 기획한 방대한 연작 프로젝트를 의미합니다. 단편적인 이야기들의 묶음이 아니라, 동일한 인물들이 반복 등장하며 하나의 사회를 입체적으로 구성하는 구조입니다.
배경은 파리 뒷골목의 보케 부인 하숙집입니다. 이곳에는 시골 출신 법학도 외젠 드 라스티냐크, 전직 제면업자 고리오 영감, 정체를 알 수 없는 중년 남자 보트랭이 함께 살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군상극처럼 보이지만, 읽다 보면 각 인물이 당시 프랑스 사회의 한 단면을 정확하게 대리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발자크는 나폴레옹 시대를 청소년기에 보낸 작가입니다. 그는 하루에 커피를 40잔 가까이 마시며 집필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결국 그 때문에 심장 질환을 얻었습니다. 그런 집요함이 이 작품에도 그대로 녹아 있습니다. 프랑스 사실주의 문학(Réalisme)이란 사회의 추한 현실을 낭만화하거나 미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문학 조류를 말합니다. 발자크는 바로 그 조류의 대표 주자로 꼽힙니다.
소설 속 파리는 외젠의 눈에 "발을 잘못 디디면 목까지 잠겨버리는 진흙탕"으로 보입니다. 제가 처음 이 묘사를 읽었을 때, 꽤 오랫동안 그 문장 앞에 멈춰 있었습니다. 낭만의 도시라는 이미지와 너무 달랐기 때문입니다. 발자크가 그린 파리는 화려한 외면 뒤에 끊임없는 욕망과 계산이 작동하는 공간입니다.
- 『인간 희극』: 프랑스 사회 전체를 기록하려 한 발자크의 연작 소설 프로젝트
- 프랑스 사실주의 문학: 현실을 미화 없이 직시하는 19세기 문학 조류
- 보케 부인 하숙집: 소설의 배경이자 파리 하층~중간 계급의 축소판
부성애와 물질주의, 어느 쪽이 먼저 무너졌나
이 소설을 두고 "딸들에게 배신당한 아버지 이야기"라고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셰익스피어의 『리어왕』과 비교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 입니다. 실제로 고리오 영감은 두 딸인 아나스타지와 델핀을 귀족 집안에 시집보내면서 재산 대부분을 내어주고, 이후 얼마 남지 않은 돈마저 조금씩 딸들에게 나눠줍니다. 결국 그는 하숙집에서 빈털터리로 병들어 죽고, 딸들은 장례식에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저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고리오를 단순히 "희생적인 아버지"로만 보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는 딸들이 잘못된 선택을 반복해도 계속 돈을 내어줍니다. 아나스타지는 애인의 도박 빚을 아버지 돈으로 갚다가 남편에게 발각되고, 델핀은 재산 분할 소송까지 냈지만 그마저 거절당하자 아버지를 찾아옵니다. 두 사람 모두 위기에 처했을 때만 아버지 문을 두드린 겁니다.
고리오의 사랑 방식에 대해 "그것이 진정한 부성애"라고 보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조금 다르게 읽혔습니다. 무조건적 희생이 때로는 상대방이 책임감을 키울 기회를 빼앗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 제 경험상 이건 부모 자식 관계가 아니어도 비슷하게 작동합니다. 무엇이든 들어주는 관계는 결국 받는 사람 입장에서 그 관계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만들기 쉽습니다.
한편 외젠의 변화도 이 소제목에서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처음에는 보트랭의 살인 청탁을 거부할 만큼 도덕적 기준이 있는 인물입니다. 하지만 파리 상류사회에 오래 노출될수록 그 기준이 조금씩 흔들립니다. 문학 연구자들은 이를 '사회화(socialization)'의 어두운 면, 즉 개인이 환경의 논리에 점차 동화되는 과정으로 분석하기도 합니다(출처: Project Gutenberg, Père Goriot 원문). 여기서 사회화란 개인이 특정 집단의 규범과 가치를 내면화해 가는 과정을 뜻하는데, 외젠의 경우 그것이 긍정적 성장이 아니라 도덕적 타협의 방향으로 진행된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질문, 지금 우리에게도 유효한가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인 인물은 오히려 보트랭이었습니다. 그는 탈옥수 자크 콜랭의 위장된 이름으로, 경찰에 '불사신'이라 불리는 유명 범죄자입니다. 외젠에게 살인을 통한 재산 취득을 제안하고, 수면제를 먹여 알리바이까지 만드는 냉혹한 인물입니다. 그러나 체포 직전 그가 하숙집 사람들에게 던진 말은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당신들이 우리보다 낫습니까. 우리 어깨에 진 파렴치함이 당신들 마음속에 있는 것보다 적습니다."
저는 이 문장을 읽고 솔직히 반박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보트랭은 범죄자입니다. 하지만 그가 지적하는 것은 "겉은 멀쩡한 척하면서 결국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을 이용하는 사람들"입니다. 고리오의 딸들이 정확히 그렇고, 상류사회의 귀족 부인들이 그렇습니다. 보트랭은 다만 그걸 음지에서 직접 행동으로 옮겼을 뿐이라고 말하는 셈입니다.
물론 "사회가 부패했으니 개인의 범죄도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읽는 건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위선적인 사회 구조가 존재한다는 것과, 그 안에서 살인이 정당화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발자크가 보트랭을 등장시킨 이유는 분명 독자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기 위함이라고 저는 읽었습니다. 범죄자의 입을 빌려 위선을 고발하는 이 장치는 지금의 서사 문학에서도 여전히 쓰이는 기법입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외젠은 고리오의 장례를 사비로 치른 뒤 "자, 이제 파리와 나, 우리 둘의 대결이다"라고 선언합니다. 이것이 완전한 타락 선언인지, 아니면 현실을 직시한 청년의 야망 선포인지는 해석이 갈립니다. 저는 후자에 조금 더 무게를 두고 싶습니다. 그는 고리오를 끝까지 간호하고 장례까지 치른 사람입니다. 그 행동 자체가 이미 파리 상류사회의 논리와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19세기 프랑스 문학을 연구하는 학자들 사이에서도 외젠의 마지막 다짐을 단선적 타락으로 보지 않는 시각이 존재합니다(출처: Encyclopædia Britannica, Père Goriot).
제가 이 소설을 덮으면서 가장 오래 남은 질문은 결국 이것이었습니다. 성공을 위해 어디까지 양보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떤 가치만큼은 끝까지 지키고 싶은지. 외젠이 고민한 것도, 고리오가 결국 놓쳐버린 것도, 그 선 어딘가에 있었던 게 아닐까요.
자주 묻는 질문
Q. 고리오 영감은 왜 딸들에게 계속 돈을 줬나요?
A. 이것을 순수한 부성애로 보는 시각이 있는 반면,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한 행동이었다고 보는 해석도 있습니다. 딸들이 돈을 가져갈 때만 자신을 찾아온다는 걸 알면서도 멈추지 못하는 모습은, 사랑을 물질로 유지하려는 불안한 심리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Q. 보트랭은 소설에서 왜 그렇게 중요한 인물인가요?
A. 보트랭은 탈옥수이자 범죄자이지만, 당시 파리 사회의 위선을 가장 직접적으로 지적하는 인물입니다. 발자크는 그를 통해 독자들에게 "당신은 이 등장인물들보다 정말 낫습니까"라는 불편한 질문을 던집니다. 악인의 입을 통해 사회 비판을 전달하는 이 서사 장치는 문학적으로도 매우 효과적인 구성입니다.
Q. 외젠의 마지막 선언은 타락을 의미하나요?
A. "파리와 나의 대결"이라는 선언을 완전한 도덕적 포기로 읽는 분들도 있지만, 저는 조금 다르게 봤습니다. 외젠은 고리오를 끝까지 돌보고 사비로 장례까지 치른 인물입니다. 그 행동 자체가 이미 파리 상류사회의 냉혹한 논리와 달랐습니다. 마지막 선언은 현실을 받아들이되 그 안에서 자신의 방식으로 싸워보겠다는 야망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Q. 『고리오 영감』이 지금도 읽힐 이유가 있나요?
A. 시대는 달라졌지만 연봉, 직업, 재산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비교하는 구조는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발자크가 19세기 파리를 해부하며 던진 질문, 즉 "돈이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될 때 인간관계는 어떻게 달라지는가"는 지금 읽어도 낯설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소설이 '소설의 교과서'라는 평가를 여전히 받는다고 봅니다.
결론
『고리오 영감』을 읽고 나서 한동안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고리오의 죽음이 슬퍼서라기보다, 그 죽음이 너무 낯설지 않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위해 모든 것을 내어주는 사람이 결국 혼자 남는 이야기. 현실에서도 충분히 일어나는 일입니다.
발자크가 이 소설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사회 전체가 나쁘다"는 단순한 고발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보다는 물질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삼기 시작했을 때 사람의 관계와 판단이 어떤 방식으로 무너지는지를 보여준 겁니다. 고리오는 돈으로 사랑을 지키려 했고, 딸들은 그 돈 때문에 아버지를 이용했으며, 외젠은 돈과 신분을 통해 성공하려 했습니다. 방식은 달랐지만 모두 같은 기준 위에 서 있었습니다.
제가 이 소설에서 가져온 질문은 하나입니다. 성공을 위해 어디까지 양보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떤 가치만큼은 끝까지 지키고 싶은지. 이 질문에 스스로 답을 가지고 있다면, 외젠처럼 진흙탕 같은 세계 속에서도 자기 방식으로 버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