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

나의 미카엘 (외로움, 이해, 디아스포라)

_ming_racle 2026. 8. 23. 08:00

헌신적인 남편 옆에서 아내가 점점 더 외로워진다면, 그 결혼에서 무엇이 잘못된 걸까요. 아모스 오즈의 장편소설 『나의 미카엘』을 읽으면서 저는 이 불편한 질문을 계속 붙잡고 있었습니다. 새벽 다섯 시에 기저귀를 빨고 논문을 쓰는 남편, 그 옆에서 내면으로 침잠해 가는 아내. 누가 옳고 누가 틀렸는지 도무지 판단이 서지 않았습니다.

 

나의 미카엘

헌신하면 다 되는 걸까 — 외로움의 구조

소설의 아내 한나는 우울증 진단을 받은 뒤 침대에 누워 지내는 날이 많아집니다. 남편 미카엘은 그 시간 동안 새벽에 일어나 빨래를 하고, 아침을 차리고, 학교에 다녀온 뒤 다시 집안을 돌보고, 밤에는 지질학 논문을 씁니다. 행동만 보면 흠잡을 데가 없습니다.

그런데 한나는 그런 남편을 보면서 오히려 "저 남자를 부숴버리고 싶다"는 감정을 느낍니다. 처음 이 장면을 읽었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저 역시 처음에는 한나가 답답하게 느껴졌거든요. 저 정도로 헌신하는 사람에게 왜 저런 감정을 갖는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계속 읽다 보니 미카엘이 다룬 것은 한나의 증상이지, 그 증상의 원인이 아니었다는 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한나가 왜 우울해졌는지, 무엇을 잃어버렸다고 느끼는지, 결혼이 자신의 기대와 어떻게 어긋났는지에 대해 미카엘은 깊이 들어가려 하지 않았습니다. 도움을 주는 것과 이해하는 것은 전혀 다른 행위라는 걸, 이 소설이 꽤 냉정하게 보여줍니다.

제 경험상 이건 소설 속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누군가에게 고민을 털어놓았을 때 즉각적인 해결책을 들으면 오히려 대화를 끊고 싶어질 때가 있습니다. 틀린 말이 아닌데도 그렇습니다. 상대가 내 말을 끝까지 들어주었느냐, 그것만으로도 관계의 온도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요약: 미카엘의 헌신은 한나의 증상을 관리했지만, 외로움의 원인에는 닿지 못했습니다.

 

꿈을 유치하다 했을 때 — 이해의 실패

한나에게는 어린 시절부터 이어온 상상의 세계가 있었습니다. 이웃에 살던 아랍인 쌍둥이 형제와 함께 했던 모험 놀이, 쥘 베른의 해저 2만 리 같은 탐험 소설에서 비롯된 막연하지만 강렬한 꿈들이었습니다. 결혼 후 한나는 그 세계를 남편과 함께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미카엘은 그 이야기들을 유치한 것으로 받아넘겼습니다. 이 순간이 두 사람의 거리를 결정적으로 벌린 장면이라고 저는 읽었습니다. 한나는 이후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을 남편 앞에서 꺼내지 않게 됩니다. 말문이 닫힌 게 아니라 닫은 겁니다.

아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버지를 닮아 신중하고 실리적인 아이는 어느 날 엄마에게 "아빠는 아는 건 안다고, 모르는 건 모른다고 하는데 엄마는 왜 그 선을 안 지켜?"라고 불평합니다. 그 집 안에서 한나는 남편에게도, 아들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제가 직접 이 장면을 읽으면서 느낀 건, 옳은 말을 하는 것보다 상대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함부로 무시하지 않는 태도가 관계에서는 훨씬 결정적일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틀린 것을 틀렸다고 말하는 것과, 중요한 것을 하찮다고 말하는 것은 전혀 다른 상처를 남깁니다.

  • 한나의 내면 세계: 어린 시절 모험 놀이, 탐험 소설, 아랍인 쌍둥이 형제와의 기억
  • 미카엘의 반응: 그 이야기들을 유치한 것으로 치부하고 대화를 이어가지 않음
  • 결과: 한나가 자신의 내면을 닫고 꿈의 세계로만 침잠해 감
요약: 상대가 소중히 여기는 것을 유치하다고 단정하는 순간, 대화의 문은 닫힙니다.

 

디아스포라가 만든 부부 — 이스라엘이라는 맥락

이 소설을 한나와 미카엘 두 사람의 이야기로만 읽으면 절반밖에 못 읽는다고 느꼈습니다. 아모스 오즈는 이 부부를 통해 1950년대 이스라엘 건국 초기를 살았던 이주 2세대의 이야기를 함께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디아스포라(Diaspora)란 원래 살던 땅을 떠나 각지로 흩어진 민족 집단을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여기서 디아스포라란 기원후 135년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가 유대인들을 예루살렘에서 추방하면서 시작된, 약 2,000년에 걸친 유대인들의 이산을 의미합니다. 소설 속 한나와 미카엘의 부모는 각각 러시아와 폴란드에서 이주해 온 1세대이고, 두 사람은 이스라엘 땅에서 태어난 2세대입니다.

시온주의(Zionism)는 19세기말 유럽에서 유대인 박해가 심해지면서 팔레스타인에 유대 국가를 건설하자는 움직임으로 생겨난 민족주의 운동입니다. 여기서 시온주의란 단순한 귀환 운동을 넘어, 당시 유럽 각국에서 벌어지던 조직적인 유대인 탄압에 대한 정치적 응답이었습니다. 1894년 프랑스 드레퓌스 사건처럼 무죄가 밝혀졌음에도 "유대인이기 때문에 유죄"라는 분위기가 공공연히 형성된 시대였습니다(출처: Encyclopaedia Britannica).

이주 2세대인 한나와 미카엘이 꿈꾼 것은 키부츠(Kibbutz)였습니다. 키부츠란 공동 생산과 공동 분배를 원칙으로 하는 이스라엘 특유의 공동체 마을로, 초기 이주자들의 사회주의적 이상이 담긴 공동생활 방식입니다. 특히 키부츠 공동체는 주변 아랍인들과도 평등하고 평화롭게 공존하는 것을 지향했습니다. 한나가 어린 시절 아랍인 쌍둥이 형제와 아무런 차별 없이 친구로 지냈던 것은 그 이상과 닿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쌍둥이 형제의 가족은 결국 난민촌에 수용되었고, 그들이 살던 자리는 유대인들이 차지했습니다. 점잖았던 미카엘의 입에서 "요르단과 이라크를 먼저 치고 그다음은 이집트"라는 말이 나오는 장면은 그래서 단순한 개인의 변화가 아닙니다. 이상을 잃은 사회가 어디로 흘러가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출처: Jewish Virtual Library).

요약: 한나와 미카엘의 갈등은 개인의 이야기이면서, 이상을 잃어가는 이스라엘 사회의 축소판입니다.

 

누가 옳은가보다 — 사랑의 방식이 다를 때

이 소설을 읽고 나면 많은 분들이 한나 편을 들거나 미카엘 편을 드는 방향으로 감상을 정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는 그 방식이 조금 아쉬웠습니다. 이 두 사람은 각자의 방식으로 관계를 유지하려 했지만, 상대가 원하는 사랑의 형태가 무엇인지 끝내 알지 못했다는 것이 핵심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한나가 아이에게 무관심하거나 충동적인 소비를 반복하는 장면은 독자 입장에서도 편들기 어렵게 만듭니다. 이 행동들을 단순히 남편이 이해해 주지 않아서라고 설명하면 무언가 빠진 느낌이 듭니다. 한나에게도 자신의 행동에 대한 몫이 있습니다. 제 경우엔 이 부분에서 한나를 피해자로만 읽는 게 오히려 작품을 단순하게 만든다고 느꼈습니다.

한편 일각에서는 이스라엘의 현실주의적 태도가 나치와 다르지 않다는 식의 해석을 하는 시각도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그 비교가 지나치게 강하다고 봅니다. 역사적 맥락과 폭력의 규모, 목적이 서로 다른 사건을 같은 선상에 놓으면 오히려 작품이 던지는 복잡한 질문이 단순해질 위험이 있습니다. 이 소설의 힘은 특정 국가나 인물을 선악으로 나누는 데 있지 않고, 처음에는 이상과 평화를 꿈꾸던 사람들도 두려움과 현실적 이해관계에 매몰되면서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던 가치를 잃을 수 있다는 경고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저에게 이 소설의 질문은 이것이었습니다. 꿈과 현실, 어느 한쪽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는가. 사랑에는 현실적인 책임만으로 채울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부분을 무시하면 관계가 조용히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아모스 오즈는 매우 담담한 문장으로 써냈습니다.

요약: 한나와 미카엘 중 누가 옳은지가 아니라, 서로 다른 사랑의 언어를 끝내 배우지 못했다는 것이 이 소설의 핵심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나의 미카엘』은 어떤 분들에게 추천할 만한 책인가요?

A. 부부 관계나 오랜 파트너십에서 말할 수 없는 외로움을 느껴본 분들께 특히 와닿을 작품입니다. 또한 이스라엘 현대사나 디아스포라의 역사적 맥락에 관심이 있다면, 소설 한 편으로 그 시대 분위기를 꽤 깊이 체감할 수 있습니다.

 

Q. 소설에서 한나가 꾸는 꿈은 어떤 의미인가요?

A. 한나의 꿈은 단순한 몽상이 아니라 현실에서 이해받지 못한 감정들이 도피하는 공간에 가깝습니다. 어린 시절 아랍인 쌍둥이 형제와의 기억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도, 잃어버린 이상과 공존의 감각을 그 꿈이 대신하고 있기 때문으로 읽힙니다. 현실이 메마를수록 꿈이 더 선명해지는 구조입니다.

 

Q. 미카엘이 잘못한 것인가요, 한나가 잘못한 것인가요?

A. 이 소설은 어느 한쪽을 명확히 잘못으로 지목하지 않습니다. 미카엘은 가족을 위해 성실하게 헌신했고, 한나는 자신의 내면에 지나치게 갇혀 상대의 노력을 보지 못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상대가 원하는 사랑의 방식을 끝내 배우지 못한 것이 이 관계의 비극입니다.

 

Q. 시온주의나 디아스포라 같은 역사를 모르면 이 소설을 이해하기 어렵나요?

A. 역사적 배경을 알면 훨씬 풍부하게 읽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몰라도 부부 관계의 이야기로 충분히 읽힙니다. 다만 소설 후반부에서 이스라엘과 주변국의 갈등이 미카엘의 태도 변화와 연결될 때, 역사 맥락을 조금 알고 있으면 그 장면의 무게가 훨씬 다르게 느껴집니다.

 

결론

『나의 미카엘』을 덮고 나서 한동안 제가 계속 떠올린 건 미카엘의 헌신도, 한나의 꿈도 아니었습니다. 두 사람이 같은 공간에 살면서 서로의 세계를 한 번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게 부부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의 이야기이기도 했습니다.

꿈만으로는 현실을 살 수 없고, 현실만으로는 삶이 너무 메마릅니다. 이 소설은 그 두 가지를 함께 붙잡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얼마나 중요한지를 1950년대 예루살렘의 한 아파트 안에서 아주 조용하게 보여줍니다. 아모스 오즈의 문장이 담담할수록 그 빈자리가 더 크게 느껴졌습니다. 관계에서 무언가 막힌 느낌이 드는 분이라면, 이 소설에서 생각할 거리를 꽤 많이 찾게 되실 겁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9boN0DT9d2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