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 (맥락, 착각, 창작)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Java 개발자로 일하면서 늘 "코드는 정확해야 한다"는 원칙 아래 살아왔는데, 한 편의 소설이 그 확신을 흔들어 놓을 줄은 몰랐습니다. 스기 우이의 소설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는 티백 한 장에서 시작된 명언한 줄이 한 사람의 인생 전체를 어떻게 재편하는지를 다룹니다. 착각, 우연, 그리고 그것이 만들어내는 진짜 삶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명언의 출처와 맥락, 왜 중요한가
제가 직접 경험해봤는데, 개발 공부를 하다 보면 Stack Overflow나 GitHub에 올라온 코드 스니펫(code snippet)을 그대로 가져다 쓰는 경우가 꽤 많습니다. 여기서 코드 스니펫이란 특정 기능을 구현하기 위해 떼어낸 짧은 코드 조각을 말합니다. 문제는 이 코드가 어느 버전의 라이브러리를 기준으로 작성됐는지, 어떤 맥락에서 쓰인 건지를 모른 채 쓰다가 엉뚱한 버그가 생기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는 점입니다. 출처와 맥락을 모르면 의도치 않은 오류가 생긴다는 걸 몸으로 배웠습니다.
소설 속 주인공 도이치는 일본에서 괴테 연구의 일인자로 꼽히는 독문학자입니다. 독문학(Germanistik)이란 독일어권의 언어·문학·문화를 연구하는 학문 분야를 말합니다. 그런 그가 티백에 인쇄된 "사랑은 모든 것을 혼란시키지 않고 섞는다"는 문장이 정말 괴테가 한 말인지 확신하지 못합니다. 전공자임에도 불구하고 처음 본 문장인 것입니다. 이 아이러니 하나가 소설 전체를 끌어가는 서사적 모티프(narrative motif), 즉 이야기 전체를 관통하며 반복되는 핵심 소재가 됩니다.
소설이 지적하는 지점은 꽤 날카롭습니다. 명언이 광범위하게 퍼지는 현상을 살펴보면, 그 말을 한 사람이 유명할수록 진위 여부와 상관없이 인용이 확산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실제로 인터넷에 유통되는 명언 중 상당수는 출처가 잘못 기재되거나 원문이 왜곡된 경우입니다. 허위 인용 확산 문제를 다룬 연구에 따르면 소셜 미디어 환경에서 출처가 불명확한 인용문이 검증된 정보보다 더 빠르게 공유되는 경향이 있습니다(출처: 한국언론진흥재단). 소설 속 독일 유학생 요한이 "인용할 말이 생각나지 않으면 괴테가 했다고 하면 된다"라고 농담처럼 말하는 장면은 그 현상을 정확히 꿰뚫고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저는 소설에 동의하면서도 한 가지 의문이 남았습니다. 말의 진위보다 의미가 중요하다는 시각도 이해하지만, 현실에서는 잘못된 인용이 실제 해를 끼치는 경우도 분명히 있기 때문입니다. 의학 정보나 법률 해석을 잘못된 출처 기반으로 인용할 경우 피해는 당사자에게 고스란히 돌아갑니다. 의미와 진위, 둘 다 중요하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착각이 만든 진짜 삶, 우연의 인과
제가 처음 임베디드 시스템 공부를 시작했을 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C언어의 포인터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어떤 예제 코드를 보고 "이게 메모리를 직접 건드리는 거구나"라며 흥미를 느꼈고, 그게 계기가 되어 하드웨어 쪽으로 공부 방향을 넓히게 됐습니다. 나중에 돌이켜보면 그 첫 이해는 절반쯤 틀린 것이었지만, 그 틀린 이해가 없었다면 지금의 방향도 없었을 겁니다.
소설 속 도이치의 이야기가 딱 그렇습니다. 그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판타지아에 매료되어 그 원작자가 괴테라는 말을 듣고 서점으로 달려갑니다. 판타지아의 원작은 사실 괴테의 희곡 파우스트가 아니라 그의 시 마법사의 제자였지만, 당시 고등학생이던 도이치는 그걸 알 리 없었습니다. 잘못된 이해로 파우스트를 집어 들었고, 거기서 완전히 빠져들어 결국 평생을 괴테 연구에 바치게 됩니다.
이 구조는 단순히 "실수도 괜찮다"는 위로의 메시지가 아닙니다. 소설이 말하려는 것은 발화(utterance), 즉 누군가가 처음 내뱉은 말과 그것이 전승되고 변형되는 과정의 관계입니다. 발화란 특정 맥락에서 화자가 산출하는 언어 행위를 뜻하는 언어학 용어입니다. 원래의 말과 그것이 개인에게 체화된 방식 사이의 거리, 그 거리 안에서 발생하는 변형이 오히려 창조의 원천이 된다는 것입니다.
소설에서 주인공의 동료 시카리가 하는 말이 이 주제를 잘 압축합니다. "작가나 학자는 어디선가 날아온 나뭇잎 한 장으로 자신만의 숲을 만드는 사람들이다." 제가 임베디드와 AI를 공부하면서 반쯤 틀린 이해에서 시작했던 경험과 이 문장이 겹쳐 보였습니다. 한 장의 나뭇잎이 틀렸다고 해서 숲이 가짜가 되지는 않습니다.
창작의 본질, 재조합과 체화
소설이 메타소설(metafiction)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점도 눈에 띕니다. 메타소설이란 소설이 소설 쓰기 자체를 주제로 삼아 허구와 현실의 경계를 의식적으로 드러내는 서사 방식을 말합니다. 이 작품의 프롤로그에서 장인이 사위에게 들려준 이야기가 그대로 소설 본문이 됩니다. 이야기를 들은 사람이 그것을 자기 방식으로 재구성해 소설로 쓰는 행위 자체가, 명언이 전승되고 변형되는 과정과 구조적으로 동일합니다.
이 소설이 지적이다고 느껴지는 이유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레퍼런스(reference)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이야기에 체화하는 방식이 지적입니다. 레퍼런스란 다른 텍스트나 작품을 의도적으로 참조하거나 인용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 칵테일, 잡탕이라는 술집 이름, 감자 샐러드 같은 소소한 소재들이 소설의 핵심 주제와 연결되어 있어 구조가 촘촘합니다.
- 학문 세계의 관행, 예를 들어 "자기 분야는 모르는 것도 아는 척, 남의 분야는 아는 것도 모르는 척"이라는 학계 매너에 대한 묘사가 보편적 공감을 끌어냅니다.
- 액자 구성(frame narrative)을 통해 명언의 전승 구조를 이야기 형식 자체로 재현합니다. 액자 구성이란 이야기 안에 또 다른 이야기가 들어 있는 서사 구조입니다.
제가 Java 개발을 하면서 리팩토링(refactoring)을 반복했던 경험이 이 소설의 창작론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리팩토링이란 코드의 기능은 바꾸지 않으면서 구조를 개선하는 작업을 말합니다. 남이 쓴 코드를 그대로 쓰는 게 아니라 이해하고, 분해하고, 내 방식으로 다시 조합하는 과정. 그것이 바로 시카리가 말한 "나뭇잎으로 숲을 만드는" 방식과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짚고 싶습니다. 이 소설은 등장인물 대부분이 학자이고, 문학과 철학을 둘러싼 대화가 중심을 이루다 보니 독자층이 제한적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23세 작가가 쓴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이라는 점은 분명 주목할 만하지만(출처: 문학동네), 학문적 맥락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에게는 진입 장벽이 있을 수 있다는 점도 솔직히 말해두고 싶습니다.
이 소설을 읽고 나서 한동안 머릿속에 남은 문장이 있습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혼동시키지 않고 혼연일체로 만든다." 맞는 말인지 틀린 말인지보다, 이 문장이 도이치의 삶 안에서 어떤 마법의 주문이 되었는지가 더 중요했던 것처럼, 우리가 기억하고 반복하는 말들도 결국 그 말 자체보다 그것을 어떻게 살아내느냐가 핵심일 겁니다. 착각에서 시작한 공부가 진짜 방향이 되었던 제 경험처럼, 이 소설은 출발점의 정확성보다 그 이후의 여정이 더 중요하다고 조용히 말하고 있습니다. 괴테에 관심이 없어도, 문학에 깊지 않아도, 한 번쯤 읽어볼 만한 소설입니다.